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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택트렌즈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2026.08.22
콘택트렌즈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콘택트렌즈는 이상한 물건입니다.

두께는 종이보다 얇습니다.

아침에 눈에 올리고, 하루 종일 세상을 보고, 저녁에는 어떤 제품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너무 익숙해서 별생각이 들지 않지만, 인간의 몸에 사용하는 제품 중 이만큼 대담한 것도 드뭅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한 장을 각막 바로 위에 올려놓고 시력을 교정한다.

누가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의외로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은 1508년, 그러나 렌즈는 아니었습니다

콘택트렌즈 역사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첫 번째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1508년경 다빈치는 눈이 물과 접촉했을 때 빛이 굴절되는 방식을 스케치하고 연구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다빈치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콘택트렌즈를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쿠팡도 없었고, 원데이 아큐브도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것은 각막과 물 사이에 새로운 광학적 환경을 만들면 시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훨씬 원초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실제로 착용 가능한 콘택트렌즈까지 가려면 그 뒤로 약 380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1880년대 후반 Adolf Fick, Eugène Kalt, August Müller 등이 유리로 만든 공막렌즈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간단했습니다.

유리였습니다.

그리고 컸습니다.

초기의 렌즈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작은 렌즈처럼 각막 위에 살짝 올라가는 물건이 아니라 흰자까지 상당 부분 덮는 형태였습니다.

시력은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기분은 별로였을 겁니다.

플라스틱이 등장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20세기가 되자 유리 대신 PMMA 같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벼워졌습니다.

깨지지도 않았습니다.

1948년 Kevin Tuohy가 현대적인 각막 콘택트렌즈에 가까운 플라스틱 렌즈를 개발하면서 렌즈는 훨씬 작아졌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눈에는 아주 까다로운 요구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각막은 산소가 필요합니다.

콘택트렌즈를 잘못 만들면 시력은 교정하면서 정작 그 시력을 담당하는 조직을 괴롭히는 이상한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콘택트렌즈 역사는 사실상 100년 동안 이어진 질문이었습니다.

잘 보이게 하면서 어떻게 눈이 렌즈를 최대한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문제를 결정적으로 바꾼 사람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있었습니다.

세계를 바꾼 렌즈는 거대한 연구소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Otto Wichterle.

고분자화학자였습니다.

Wichterle와 Drahoslav Lim의 연구팀은 물을 흡수해 부드러워지는 친수성 고분자, 즉 훗날 소프트렌즈의 기반이 되는 hydrogel 계열 소재를 연구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전형적인 과학혁명 이야기 같습니다.

최첨단 연구실.

국가 연구비.

우수한 연구팀.

그리고 혁신.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약간 다릅니다.

1958년 정치적 숙청 과정에서 Wichterle를 포함한 교수들이 학교에서 쫓겨났고, 콘택트렌즈 연구도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관련 연구는 정부기관에서도 충분한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중단됐습니다.

Wichterle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연구실을 잃었다면?

집에서 하면 됩니다.

그리고 1961년 크리스마스가 옵니다.

인류 최초의 실용적인 소프트렌즈 생산기는 어린이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Wichterle는 집에서 작은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사용한 재료가 걸작입니다.

체코의 어린이용 금속 조립 장난감 Merkur.

아들의 자전거에서 가져온 다이너모.

초인종용 변압기.

그리고 자신이 만든 금형.

1961년 크리스마스 오후, 그는 이 기계로 회전하는 틀 안에서 액체 상태의 소재를 굳히는 spin casting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네 개의 소프트렌즈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네 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가장자리가 비교적 균일했고, 눈에 넣었을 때 이전 제품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현대의 콘택트렌즈 산업이 시작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장소는 글로벌 제약회사 연구소가 아니었습니다.

집이었습니다.

기계는 수백만 달러짜리 생산장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장난감이었습니다.

혁신은 가끔 꽤 무례하게 등장합니다.

그리고 부부는 집에서 렌즈 수천 개를 만들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Wichterle는 기계를 계속 개조했습니다.

축을 늘렸습니다.

자전거 다이너모로 힘이 부족해지자 이번에는 집에 있던 레코드플레이어의 모터를 가져왔습니다.

그와 아내 Linda는 1962년 첫 몇 달 동안 집에서 수천 개의 렌즈를 만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스타트업 이야기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직접 생산하고,

사용자에게 테스트하고,

공정을 개선하고,

그제야 산업이 따라옵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의 시제품은 앱이 아니라 사람 눈에 들어가는 물건이었다는 정도입니다.

미국 기업이 등장하면서 진짜 산업이 시작됩니다

소프트렌즈는 이후 Bausch + Lomb을 통해 대량생산 시대로 들어갑니다.

Bausch + Lomb은 관련 기술을 도입해 생산기술을 개발했고, 1971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미국 최초의 대량생산 소프트 콘택트렌즈를 상용화했습니다.

여기서 콘택트렌즈가 비로소 과학자의 발명품에서 소비재 산업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하나 남았습니다.

렌즈를 계속 씻어야 했습니다.

보관해야 했습니다.

단백질 침착도 관리해야 했습니다.

잃어버리면 슬펐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Johnson & Johnson이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냥 자주 새것으로 바꾸면 안 될까?

1987년, 아큐브가 렌즈의 경제학을 바꿉니다

Johnson & Johnson은 1981년 작은 콘택트렌즈 업체 Frontier Contact Lenses를 인수했습니다.

이 사업은 훗날 Vistakon이 됩니다.

그리고 자동화된 성형 기술을 발전시켜 1987년 ACUVUE를 출시합니다.

대량 판매되는 교체형 소프트렌즈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ACUVUE 브랜드는 현재 1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엄청났습니다.

과거 렌즈는 안경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를 사고 관리해서 오래 썼습니다.

새로운 렌즈는 점점 칫솔에 가까워졌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교체합니다.

그리고 원데이 렌즈가 등장하면서 마침내 이렇게 됩니다.

아침.

착용.

하루.

폐기.

끝.

그런데 사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 콘택트렌즈의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안경 없이 잘 보이게 하자.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은 질문을 바꿨습니다.

갈색 눈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들면?

회색으로 보이게 하면?

홍채 가장자리에 검은 링을 넣으면?

눈을 더 커 보이게 하면?

빛이 한쪽에 맺힌 것처럼 디자인하면?

시력교정기구가 뷰티 제품과 만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컬러렌즈 사이트를 보면 정말 같은 제품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Brown.

Ash Beige.

Olive.

Mauve Pink.

Choco.

Dew Gray.

렌즈가 아니라 립틴트 컬러표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콘택트렌즈의 재미있는 역사입니다.

1508년에는 빛의 굴절을 연구했습니다.

1888년에는 유리를 눈에 올렸습니다.

1961년에는 체코의 과학자가 장난감으로 렌즈 제조기를 만들었습니다.

1971년에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에는 교체형 소비재가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력을 고치면서 동시에 얼굴의 분위기까지 디자인합니다.

렌즈는 점점 얇아졌습니다.

그 위에 올라간 산업은 점점 커졌습니다.